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본 제국 (문단 편집) === 조선 === [include(틀:일제강점기 교육기관)] [include(틀:구 제국대학)] [include(틀:일제강점기 조선의 구제전문학교)] 1938년 제3차 조선교육령을 통해 내지와 조선의 학제가 완전히 통일되기 전까지 조선의 교육 제도는 일본 내지와 차이가 있었다. 우선 1922년 제2차 조선교육령 공포 이전까지는 조선에 있는 각급 초등/중등 학교의 수학연한 자체가 일본 본토와 달랐다. || || 제1차 조선교육령[br] 1910~1922년 || 제2차 조선교육령[br] 1922~1937년 || || 초등교육 || [[보통학교]] 4년 || 보통학교 6년 || || 중등교육 || [[고등보통학교]] 4년 || 고등보통학교 5년 || || 고등교육 || [[구제전문학교]] 3~4년 || 구제전문학교 3~4년[br] [[경성제국대학]] 6~7년 || 1915년 [[조선총독부]]의 전문학교 규칙 제정 이전까지 [[보성전문학교]], [[연희전문학교]] 등 조선의 사립 전문학교는 인가를 받지 못해 명칭만 전문학교였을 뿐이었고, 본토의 [[소케이]]와 같은 [[구제전문학교]]로 대우받지 못했다. [[구제대학]] 진학을 희망시에는 [[구제중학교]] 졸업 상당의 학력으로 인정받아야 [[구제고등학교]], [[대학예과]] 입시자격을 얻을 수 있었는데 당시 조선의 [[보통학교]](4년)와 [[고등보통학교]](4년)의 수학연한이 일본 [[소학교]](6년)와 [[구제중학교]](5년)를 합한 것보다 3년이나 짧았기 때문에 [[고등보통학교]] 졸업자는 [[구제중학교]] 졸업자로 인정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고등보통학교 졸업자가 일본의 상급학교에 진학하고 싶으면 구제중학교 3학년에 [[편입학]]해 졸업해야다. 평양고보를 중퇴한 다음 일본 본토의 중학교에 편입하여 [[구제고등학교|제6고등학교]], [[도쿄제국대학]]을 거친 정광현[* [[윤치호]]의 사위.]이 그 예다. 경성중학교(현재의 [[서울고]]), 용산중학교(현재의 [[용산고]]) 같은 조선 내의 일본인들이 수학하는 [[구제중학교]]의 경우 일본 내지와 동일한 학제를 취했지만, 일본어를 상용했기 때문에 조선인 가정의 자녀는 취학 자체를 보통학교가 아니라 소학교로 해서 졸업한 경우가 아니면 입학은 거의 불가능했다. 소학교에서부터 일본인 학생들과 일본어로 입시를 치러야했기 때문이다. 이런 차별이 조선인들의 불만을 초래했고, 지속적인 반발이 제기되었으며 내지연장주의/동화주의에 입각한 제2차 조선교육령에 가면 수학연한이 통일되는 방향으로 학제가 개편되었다. 1922년 조선교육령의 개정(제2차 조선교육령) 공포와 시행 이후 [[조선총독부]]의 전문학교 규칙이 내지의 전문학교령을 준용함에 따라 조선의 사립 전문학교도 요건을 갖추어 인가를 받았다면 정식 [[구제전문학교]]로 인정되었다. 조선 내 전문학교 졸업생은 [[경성제국대학]] 본과에 결원이 있을 경우 편입이 가능했으나, [[구제고등학교|경성제대 예과]] 출신 학부생과 동등한 취급을 해준 것은 아니었고, [[대학예과]]가 존재한 경성제대 특성상 결원이 많지 않아서[* 일본 내지에서는 [[구제고교]] 졸업예정자들이 도쿄와 교토의 인기학부로 몰리면서 [[제국대학]] 중 예과가 있었던 홋카이도제국대학을 제외한 도호쿠, 규슈 등 지방의 제국대학은 [[구제전문학교]] 출신이 더 많은 해도 있었다고 한다. 경성제대 졸업생은 90% 이상, 특히 1934년 예과가 3년제로 개편되면서 예과 졸업생이 배출되지 않은 1936년 의학부 신입생으로 모집된 내지의 구제고등학교 졸업생 수십 명을 제외하면 95% 이상이 경성제대 예과 출신으로 구제전문학교 등 기타 학교 출신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일제강점기 조선 내에서 [[학사]]와 [[박사]][* [[구제대학]]은 예과 포함 6~7년 과정으로서 미국식 석사 과정을 포함한 학석사 통합과정에 상응하여 별도의 석사는 존재하지 않았고, 박사는 아주 영예로운 칭호였다. 제국대학령 참조.]를 취득할 수 있던 곳은 조선의 유일한 [[구제대학]]인 [[경성제국대학]]뿐이었다. 조선의 [[구제전문학교]]들과 달리 내지의 [[구제고등학교]]들은 1920년대에도 고등보통학교 졸업을 [[구제중학교]] 졸업과 동등한 것으로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단순히 수학 연한이 짧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조선의 고등보통학교들은 내지의 구제중학교와 달리 농업, 부기, 주산 등 직업교육(手工)을 가르쳤고, 수업 내용도 훨씬 쉬웠다. 영어는 성적이 좋은 학생에게만 가르치거나 알파벳만 가르쳤다.[* 화학자 [[이태규]]는 [[고등보통학교]]까지는 조선에서 나왔는데, 거의 매 학기 수석을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알파벳을 다 알지 못 했다고 한다.] 이렇게 정규 교과 과목은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에 그쳤다. [[와세다대학]], [[게이오기주쿠대학]], [[메이지대학]] 등 [[사립대학|사립]] [[구제대학]]의 경우에는 조선에서 [[구제전문학교]]를 졸업했으면 [[대학예과]]를 생략하고 학부(본과)로 입학하게 해주는 경우가 많았다. 많은 조선인 학생들이 관공립대학이 아니라 사립대학으로 유학한 이유였다. 뿐만 아니라 사립대학들은 [[구제대학]] 승격 후에도 승격 이전 시절의 기존 [[구제전문학교]] 과정을 부속 전문부라는 소속기관으로 두고 있어서, [[고등보통학교]] 졸업 학력만 있어도 해당 부속 전문부로 진학할 수 있었다.[* 일본제국의 전문학교령에 따르면 [[구제전문학교]]는 [[구제중학교]] 졸업 또는 그에 상당하는 학력을 가진 자를 입학시킬 수 있었고, 조선교육령 제27조에 “전문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자는 연령 16세 이상으로 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자, 또는 이와 동등 이상의 학력을 가진 자로 한다.”고 규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전문부는 [[구제전문학교]]격으로 [[구제대학]] 예과를 거쳐 학부(본과)를 졸업한 자와 달리 학사를 받지는 못했지만, 오늘날 신제대학과 동격의 학교로서 졸업생은 엘리트 대우를 받았다. [[구제고등학교]]/[[대학예과]] 3년과 학부 3~4년까지 총 6~7년 이상을 재학해야하는 [[구제대학]] 학부까지 다니는 경우는 [[고등문관시험]]을 통해 고위관료로 출세를 원하거나 학자가 되고 싶은 극소수 경우였다. 그래서 조선인 유학생이 일본에 유학한 경우는 대부분 사립대학 전문부에서 마쳤다.[* 'XX대학 전문부 졸업' 같은 식이다.] [[파일:201801101443_gmKJU49.gif]] 그러나 제2차 조선교육령 공포 후 내지동화주의로 전환됨에 따라 고보의 교과 과정 역시 중학교와 맞춰졌고, 보통학교에 취학할 때부터 일본 내지와 동일하게 교육 받은 1910년대 후반 출생 세대부터는 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일본 본토의 구제고등학교로 진학하는 예가 많이 늘어났다. 일례로 [[서울대학교]] 교수를 역임한 서돈각은 대구에서 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다음 마쓰야마 고등학교에 입학하였고, 역시 서울대 교수를 역임한 민석홍은 서울에서 경기고등보통학교(현재의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한 다음 제8고등학교로 진학하였다. 1930년대 [[만주사변]]과 [[중일전쟁]] 등으로 만주, 중국 침략에 나선 일제는 조선을 내지화하였고, 1930년대 후반에 가면 조선의 학제를 완전한 내지연장주의에 입각하여 학교 명칭까지 보통학교→소학교, 고등보통학교→중학교로 내지와 통일시키는 제3차 조선교육령(1938)을 공포하였다. || || 제2차 조선교육령[br] 1922~1937년 || 제3차 조선교육령[br] 1938~1945년 || || 초등교육 || [[보통학교]] 6년 || [[소학교]] 6년 || || 중등교육 || [[고등보통학교]] 5년 || [[구제중학교]] 5년 || || 고등교육 || [[구제전문학교]] 3~4년 || [[구제전문학교]] 3~4년[br] [[경성제국대학]] 6~7년 || 1940년대 [[태평양전쟁]] 개전 후 일제 말기에는 전시 총력전 체제로 이행하면서 국민학교 6년, 국민학교 고등과 2년으로 초등교육이 개편되었는데, 국민학교 고등과 졸업자의 절반 이상이 취업하거나 가업을 이었고 나머지만 상급학교에 진학했다. 그래서 고등보통학교만 졸업해도 먹물 취급을 받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